앵그리 소사이어티와 크리스찬의 분노(3)
오태균 교수(총신대)
둘째, 목회자의 경우를 보면 분노를 경험하는 외적요인으로는 자신이 처한 독특한 한국적 목회환경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목회자의 설교에 대한 부담은 세계 다른 교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중하다. 주일설교, 수요설교, 금요철야, 새벽기도회 설교, 심방 설교 등으로 목사는 일주일 내내 설교 준비에 대한 부담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설령 부교역자가 있다하더라도 담임목사는 일주일 평균 주일 낮 설교를 포함하여 2-3편의 설교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찰, 본문 주해를 위한 연구 시간을 따로 구별해서 내기란 한국에서 목회를 해본 사람이라면 결단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마치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마치 설교 준비가 반복적으로 산정상을 향해 굴리고 올라가야 하는 큰 바위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 뿐아니라 탁월한 설교에 대한 강박과 부담으로 인해 목회자는 설교 준비를 위한 일에 방해를 받게 되면 상대방이 가족이든 혹은 교인이든 간에 분노 표출을 이어질 가능성이 항상 있다.
과중한 설교부담에 이어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비현실적 기대는 목회자의 분노 표출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보편적으로 교인들은 자신의 목회자에 대해 위대한 설교자, 교사, 행정가, 치유자, 지도자이며 경제적으로는 청렴한 선비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만능 은사를 가진 목회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목회자 역시 경제 문제로 인해 자녀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이런 정신적 압박감은 분노를 촉발시킬 수 있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위와 같은 교인들의 비현실적 기대등으로 인해 목회자는 대인관계에서 늘 긴장감을 가질 수 있으며, 건강치 못한 자존감을 가진 목회자에게는 이것이 분노를 통제하기 힘든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교인들은 목회자의 가정은 ‘위대한 성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목회자는 자녀들이 사춘기에 탈선하거나, 사모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못한다는 판단이 들 때, 이는 또 다른 분노 촉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압박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일부 목회자들은 분노 표출 대신 일중독이라는 또 다른 역기능적 대체물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건강치 못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일중독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신체적, 정서적 기반을 위협하고, 정서에 인화 물질과도 같은 일중독 상태는 한 순간 작은 스트레스라는 뇌관에 의해 분노폭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분노 표현 양식
그렇다면 목회자는 어떻게 분노를 표출시키는가? 목회자들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크게 3가지 양식, 즉 감정폭발형, 감정억압형, 그리고 감정통제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소위 다혈질에 속하는 감정폭팔형 (Anger Out)이다. 이런 유형의 목회자는 주기적으로 냉정을 잃는 사람이다. 필자는 목회자들로 구성된 정기 조기 축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축구는 다소 격한 운동에 속하기 때문에 경기 중 몸싸움 하는 일이 잦으며, 또한 판정 불만에 대한 시비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만일 당신이 그런 현장에서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신체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몸싸움과 판정 불만의 순간 당신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을 방출하는 신경이 분주해지기 시작하고, 몸의 근육은 힘이 들어간 채 잔뜩 긴장하게 된다. 심장 박동수는 점차 빨라지고, 당신의 목은 굳어져가며, 이마는 뜨거워져 간다. 잠시나마 당신의 분노를 분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판정의 상황이 부당하다고 계속 느끼면, 그야야말로 당신은 ‘펑!!’ 하고 터져버릴 수 있다.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또한 교회에서 교역자 회의를 하면서 부교역자의 실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회의 석상에서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모습도 바로 이 감정폭발형에 속한다. 이런 유형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감정을 마구 쏟아내거나 분노의 노예가 되어 그가 이끄는대로 끌려 다닌다. 이를 참거나 자제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후회와 합리화에 사로잡힌다. 반면에 통제하는 폭발형이 있는데, 이는 고의적으로 분노를 터뜨려 상대방을 조정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목회자는 분노 표현이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의 분노 표현은 계획적일 때가 많고 철저하게 계산적이며 통제되는 분노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감정억압형 (Anger In)이다. 심리학에서는 억압 (repression)과 억제 (suppression)를 구분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경우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길 것을 직감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흔히 사용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억압 혹은 억제이다. 억압은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무의식 세계에서의 정신적 역동이고, 억제는 억압보다는 훨씬 건강한 방어기제로 분노의 내용과 자신의 감정 모두를 동시에 의식하면서 시기를 찾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억제는 억압이 건설적으로 발전된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감정 폭발형과 마찬가지로 억압형에도 두가지의 양식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분노를 억압 내지 부정하는 자기 징벌형 (self-punisher)이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분노가 없는 척 하는 위장 분노형 (underhanders)형이다. 자기 징벌형은 외부로 자신의 분노를 잘 내지 않는, 적어도 외부인들이 볼 때는 대단히 성실한 목회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역에서 하찮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강박증에 시달릴 수 있으며, 보통 일중독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는 사역 현장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기 때문에, 보통 표정이 어두우며 만성적이고 미세한 우울감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런 유형은 분노라는 정서가 신체에 영향을 미치도록 방치하기 때문에 신체표현형 (somatizer)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장 분노형은 직접적인 분노 표출 대신 뒤에서 자신에게 스트레스나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험담 혹은 모함 등으로 분노 감정을 방출시킨다. 그 사람 앞에서는 그의 생각이나 견해를 은근히 비꼰다든지, 공개적인 망신을 주어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를 만는 것 행위도 위장분노형에 속한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은 목회자들에게 적용이 가능한 분노 통제형 (Anger Control)이다. 일반 심리학에서는 분노 통제에 대한 건강한 방어기제로 유머, 이타주의, 예상, 억제, 승화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목회자 유머 감각은 자신의 분노를 건강하게 통제하면서, 동시에 건강하게 표출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유머는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말이나 행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 보고도 속으로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이다. 목회자가 설교 후 그날 자신이 그 설교에 대해 만족이 안되고 부족함을 느꼈다면 수치심과 죄책감의 포로가 되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혹은 ‘내가 항상 설교를 잘할 수는 없는 법이지’하고 자신의 허물에 대해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분노를 건강하게 통제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성경은 분노 통제에 대해 다양한 모양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7:9)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37:8)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27:4)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2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1:19)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4:26-27)
위의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일반적으로 분노는 중립적인 감정이라 할지라도 선보다는 악의 문제를 일으키고, 의보다는 다툼이나 잔임함과 같은 죄로 연결될 가능성이 많은 복잡한 감정이다. 그러나 서두에서도 고찰했듯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분노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의 감정이기에, 분노 표출의 상황에서 목회자는 성경적 분노 통제 원리 (Biblical Anger Control Principle)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의 첫 번째 원리는 분노 표현을 더디하는 것으로, 분노를 억제하되 자신의 정서 내면으로 몰아넣치 말야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습관은 적절한 표출법을 익힐 수 있는 견고한 토대 (foundation)를 마련해 준다. 두 번째 원리는 해가 지도록, 즉 오랫동안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를 촉발시킨 상대방을 용서해야 한다. 영어의 Forgive란 단어를 유심히 보면 For (~을 위해서)와 Give (주다)가 합쳐진 단어이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의 승리자가 되려면, “Forgive & Forget” (용서하고 잊어버려라)이란 선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세번째 원리으로는, 분노로 인해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억압되고 건강하지 못한 분노로 많은 목회자들이 탈진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일부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품위를 벗어난 일탈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 결과 목회자는 자신의 영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목회자가 인간의 최악의 본성이 드러날 수 있는 분노에 지면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답이 없다.
나가면서
현대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은 자신의 분노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분노로 인해 자신의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에 큰 무리와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성경적 분노통제원리를 가동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앙 공동체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탄의 궤계에 대해서 목회자는 자신의 분노를 보다 더 강력한 감정 에너지와 촉매로 전환시켜 우상숭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했던 모세 (출32:15-24)와 장사꾼의 소굴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 (마2:14-16)처럼 신앙 공동체의 건강한 영성회복과 선을 이루고 세상의 부패한 구조와 환경을 새롭게 바꿀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