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와 예방(2)
오태균 교수 (총신대학교)
우울증 원인
우울증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이 말은 개인마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문제의 원인이 한가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몇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학계에서는 유전학적으로, 신경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사회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위의 사례의 경우도 신경생물학적인 요인과 심리 사회적인 요인간의 상호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신경생물학적 (nerobiological) 원인
“지금 00 상황으로는 뇌의 신경 전달 물질 이상으로 정상적으로 학습하고 집중하고 이해하는 것은 힘들고 암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두뇌는 현대의학에 의해 밝혀진바 100여가지의 신경전달 물질이 생성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감정작용과 관련이 있는 세라토닌 (seratonin), 도파민 (dopamine),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 (norephinepr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할 때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있다. 세라토닌이 부족한 사람은 수면과 관계된 문제에 시달리며 의욕과 생기가 저하되는 것을 경험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세로토닌의 합성률이 낮아서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발병률이 높게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다. 보통 남성보다 여성의 우울증 발병률이 2배 가량 높은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체는 세라토닌의 사용량이 증가하는데, 여성의 경우 세라토닌이 상대적으로 쉽게 고갈되기 때문이다.
2. 심리 사회적인 (pychosocial) 원인
“처음 우울증이 시작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던 완벽주의 성향의 아이였는데 공부를 다하고도 더 이상 공부할 게 없으면 불안해서 울고 시험 불안증으로 시작하여서 지금까지 수없이 재발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정신분적학적 입장에서는 우울증은 일종의 분노가 자기 속으로, 즉 내부로 향한 형태로 본다. 차라리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는 사람은 적어도 우울증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사람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면 부모님은 자신의 딸에 대해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성향의 사람은 현실에서 그만큼 본인이 추구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할 때, 그 분노를 자신의 내부로 돌릴 수 있다. 그 결과 본인이 원치 않는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기질로 볼 때 우울질은 다른 기질의 사람보다 완벽주의를 더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기질은 다른 사람에 대해 자신과 남에게 더 비판적이다. 그래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항상 만족을 느끼지 못하며, 어떤 성과에 대한 불만족은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 엄격하고 차가운 부모님의 훈육방식을 회고하곤 하는데, 완벽주의 성향은 부모의 양육 방식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우울증 증세
위의 사례는 ‘주요우울장애’ (major depressive disorder)에 해당하는 중중 우울증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제는 더 이상 인술로는 치료적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성장애라는 점이다. 이 내담자의 경우 우울증 증세로 크게 신체적, 정서적, 그리고 영적인 기능저하가 관찰되었다.
1. 신체적 기능저하
"학교에서 오면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고갈되어 잠부터 잔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정도이며...."
위의 내담자는 다른 학생들과의 비슷한 일상을 감당하는 것을 힘들어 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 중 내담자에게서는 외면적으로 어떤 활력적 요소도 관찰되지 않았다.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에는 다른 친구들과 교제가 거의 없었기에 특별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내면의 세계는 낙담과 친구들이 자신을 놀릴 것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인해 정서가 눌려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뚜렷한 이유 없이 슬픔이 생기고,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기비판과 죄책감, 수치심, 무가치함, 무력감, 비관과 절망감, 과민성이 자주 동반되므로 참을성이 없이 더욱 조급해지고 침착성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
신체적 기능저하는 불규칙한 수면 (erratic sleep behavior)으로 연결되어 내담자의 경우처럼 일상적인 피로감이 나타난다. “학교에 다녀오면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고갈되어서 집에 오면 잠부터 잔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정도”로 하루 일상이 힘겨워 보였다. 즉, 평범한 일상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사역, 학업, 일, 신앙생활, 취미 등의 활동에서의 흥미 부족, 집중력 부족, 식욕상실, 때때로 통증과 고통에 대한 잦은 불평을 나타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우울증 환자는 두통, 전신통, 소화불량, 가슴 답답함, 빈맥 등 신체적 호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정신건강의학보다는 내과 등 다른 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인들에 비해 동양인에게 우울증은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연구보고서가 있다.
2. 정서적 기능저하
"다른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고 아파서 힘들어한 것 밖에는 없는데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는 결과가 되어 버려서 점심도 늘 혼자 먹고 그러면 더 우울해 진다고 하는데 누구 한 사람 000를 위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 것 또한 안타깝습니다"
우울장애는 개인의 행동 (behavior)뿐만 아니라, 정서 (affectiveness)에도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이 학생의 경우처럼 우울증 환자들은 행동에 있어서 냉담함과 무기력함 (apathy-lethargy)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로 인한 활력 부족으로 중요한 결정은 물론이거니와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데도 어려움을 느낀다. 자발성 상실과 사회적 고립, 끊임없는 불평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다른 친구들과 교제를 잘 하지 않는 상담자의 질문에 대해서 그녀는 친구들이 자신을 ‘왕따’시킨다는 심각한 피해의식에 젖어있었다. 그 학생은 상담중이나 수업 중에 얼굴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소위 ‘멍 때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내담자의 경우는 사전적 정의에서 말하는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더 깊고, 더 긴 절망상태였다. 이미 다른 학생들이나 학교 환경 등 어떤 외적 자극에 관계없이 자신의 내적인 요인에 의해서 심각하게 지배되는 정동 상태 (affective state)였으며, 그녀가 가지고 있는 우울감은 비교적 개관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한 인간의 병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정서의 병리현상으로 판단된다. 정서적 기능저하 현상은 개인의 사고(thought)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자신의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또한 집중의 어려움과 기억력의 문제, 염세주의, 죄책감, 자기비판과 비난, 때로는 자기 파괴적 사고를 경험한다.
3. 영적 기능저하
“....공부를 많이 하고도 더 이상 공부할 게 없으면 불안해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으며, 시험 불안증으로 시작하여서 지금까지 수없이 재발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신앙인이 하나님을 절대적인 주권을 신뢰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가장 흔한 현상이 불안이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함께 배에 탄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다 (마8:23-25). 많은 경우 영적 기능의 저하는 신앙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크나 큰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된 후 히브리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맡았다. 출애굽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했고 결국 초기부터 과도한 사역의 압박으로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소서” (민11:14-15). 잘 알려진 또 다른 케이스가 엘리야 선지자의 우울증이다. 엘리야 선지자는 홀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했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깐,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소진되어 영적 기능이 저하되는 우울증의 증세를 보인다 (왕상19:1-14).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불굴의 신념으로 이방신들과 싸웠던 그 용맹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이세벨의 위협에 겁을 먹고 광야로 도망쳐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모순되어 보인다. 이를 소위 ‘엘리야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사역의 강렬한 ‘절정’(peak)의 체험 뒤에 탈진이 자주 발생한다. 솔로몬 역시 그이 말년에 지치고, 용기가 상실되고, 낙담되고, 우울한 모습, 즉 영적 탈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으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전2:20). 신약에서는 바울은 자신이 사역 가운데 힘들고 고통스러워 살 소망까지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고후1:8; 11:23-27). 이렇듯 우울증은 우리의 영적 기능을 저하시키는 기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들은 사역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만난다. 이럴 때 목회자는 우선 가벼운 우울 증세와 우울증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 (emotion)은 늘 움직이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 날의 상태에 따른 기분지수 (mood level)가 존재한다. 오늘 내 자신의 감정이 큰 동요가 없고 편안한 상태를 정상 (normal)이라고 가정 하자. 별다른 동요가 없는 정상 상태의 기분이 상승 무드로 전환되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happy)감을 느끼게 된다. 이 행복감이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사람은 의기양양해지는 감정의 고양 (elated) 상태로 들어간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희열 (euphoria)을 맛보는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 대표 팀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4강에 올라갔을때 우리 국민들은 모두 행복의 단계를 넘어서 희열을 맛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기분은 정상 상태에서 하강 곡선을 그릴 때가 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불행 (unhappy)을 느끼는 것이다. 이 불행감은 얼마가지 않아 슬픔으로 변하고, 그 슬픔이 제때 적절히 다루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의 감정이 굳어버리는 응고 (immobilized) 현상이 일어난다. 우울증은 불행으로 인해 슬픔에 잠기고, 이 슬픔이 장기화 되면서 그 감정이 응고되어 버리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상실 등으로 슬픈 감정을 보인다고 모두 다 우울증은 아니지만, 감정이 응고될 수 있는 주요 우울증으로 가는 길목에 있을 수는 있다. 필자가 만난 다양한 내담자들은 불행한 사람도, 슬픔에 잠긴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감정이 응고된 사람, 즉 위의 사례의 부모가 표현했듯이 “감정의 선이 막혀” 있는 내담자이다. 그래서 우울증은 감정을 상실하는 전형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정동장애라고도 불린다. 평소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활동에 무관심해지고, 무엇을 해도 흥미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우울증이 무서운 것은 불행감, 슬픔과 같은 부정적 정서가 기분으로 응고, 혹은 체화되어서 이전처럼 자신의 감정을 이성이나 의지로 통제하기 힘들다는데 있다. 우울증은 슬픔이 많은 상태가 아니라, 즐거움이 결핍된 심리상태이다. 그래서 슬픈 영화를 보면 보통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만, 개그나 코미디를 보아도 정상인보다 즐거움이 훨씬 덜 하거나, 심지어는 거기서도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나가면서: 우울증 치료와 예방을 위한 목회상담적 접근
1톤의 치료보다 1그램의 예방이 더 낫다는 말이 있듯이, 우울증은 그 예방이 최선책이다. 필자가 만난 우울증세를 보이는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목회자들을 포함해서) 다행스럽게도 위의 사례처럼 아직 마음의 응고 (immobilized)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 같이 모두들 지쳐보이고 (unhappy)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으며 어떤 소망을 가지는 것 조차 힘들어 (sad) 보였다. 이들을 위해 목회자가 도울 수 있는 길은,
첫째, 어려운 목표를 세우지 말고 많은 책임을 떠맡지 않도록 해야한다. 서두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완벽주의의 성향은 본인의 능력보다 더 크고 어려운 목표를 세우게 만든다. 완벽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이며, 우리 모두가 죄인이이라는 성경적 인간관 (롬3:23)을 부인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 현실속에서는 실제로 크고 작은 실패을 맞보게 되고, 이것은 결국 우울증으로 연결될 수 있다. 또한 과도한 책임을 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인정에 대한 욕구가 크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많은 책임을 맡는 성향이 있다.
둘째, 중요한 결정을 내담자의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와 상의없이 함부로 자퇴, 휴학, 결혼, 이혼, 휴직 등을 결정하지 말도록 권면해야 한다. “휴학도 많이 고려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과 심리 치료 선생님 모두 치료는 학교에 다니면서 병행해야지 휴학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는게 일반적이고, 최소한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학교에 가는 것보다 더 힘들거라고 하시네요. 학교에 가지 않으면 폐인되기 쉽상일 거라구요.” 만성적인 우울증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전문가의 견해를 따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학교 공동체에서 학업을 진행하는 것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신앙 공동체내에서도 우울증세가 있는 성도가 있다면 홀로 방치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예배와 소그룹에 참여를 권면하여 찬양, 기도, 말씀을 통해 우울한 감정을 털어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말씀을 계속해서 듣는 것이 우울증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롬1:16)이 되기 때문에 우울감을 떨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한 권사님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부정적인 정서에 압도되어 힘들어 했는데, 그때마다 방송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청취함으로 상당히 호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속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지체들과의 만남은 우울증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우울증은 초기에 제때에 치료한다면 80% ~ 90%가 완치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와의 상담은 우울증 치료의 첫 관문이고, 그 치료방법으로는 약물 치료, 심리 치료 등이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우울증의 증세가 보이는 성도가 있다면, 목회 상담에 대해 기본적인 (전문적이면 금상첨화이다!) 훈련을 받은 목회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내담자가 초기 상담에서 나아지지 않았다면 유능한 크리스천 의사에게 즉시 위탁하라. 우울 반응이 신체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목회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약5:14)
참고문헌
박원명외, 2012. 우울증. 서울: 시그마프레스.
이정균, 1998. 정신의학. 서울: 일조각.
정동섭. 2012. 현대 그리스도인의 우울증 헤쳐나가기.
팀 라하이. 1981. 성령과 기질. 서울: 생명의 말씀사.
하재성. 2014. 우울증, 슬픔과 함께 온 하나님의 선물. 서울: 이레서원.
Kell, D.G. 2000. 탈진: 너무 높이 오르려는 데서 오는 위험. 목회와 신학 (12월). pp. 8-65.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IHT). 2011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