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치유자 (Wounded healer)
오태균 교수 (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헨리 나우엔은 화란 출신의 카톨릭 사제이면서, 작가로, 강연자로, 교수로, 영성가로, 또한 치유자로 우리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그는 우리와는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교도들과 개신교 교인들 모두에게 많은 사랑은 받고 있는 20세기의 유일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저서들과 그와 관련된 서적들 중 가운데 50권 정도가 개신교 계통의 출판사를 통해서 국내에 소개된 것을 보면. 자신의 출신인 카톨릭 진영에서보다 개신교도 사이에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그의 대부분의 저서에서 카톨릭 신학적 색채가 진하게 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기독론을 견지하면서, 이 시대의 인간에 대한 이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의 지속적인 인기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그는 평생 사역 가운데 평범한 보통 신앙인들의 신앙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한 기도, 공동체, 사역 (communion, community, and ministry) 등은 그의 방대한 저서들 가운데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라는 점 역시 일반 성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나우엔은 안토니오 포키아 (Antonio Porchia)의 말을 인용하면서 현시대의 사역자를 용기를 내어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백 개의 닫힌 문을 만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목회나 상담 사역의 현장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여기서 사역자라함은 반드시 목회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목회자, 평신도 사역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부르심에 대해 “사역자의 부르심은 자신의 시대가 처한 고통을 그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며, 그 깨달음으로부터 그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상처입은 치유자’에서 그의 인간관과 치유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우엔은 라이즈만 (Riesman)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속한 당시 세대를 고독한 군중의 세대에 속한 익명의 일원들로 이해하면서, 장차 다가올 세대는 그 고독한 군중의 자녀들이 될 것이며, 그 시대의 사역자들이 고려해야 할 3가지의 특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우엔이 말하는 오늘날의 인간상은 내향적 (inwardness) 세대입니다. 이들의 내향성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반권위적이고 반제도적이며, 물질적 안락함과 즉각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교회 현장에 있는 목회자나 자녀를 둔 현 시대의 부모들은 교인들, 혹은 자녀들이 얼마나 반권위적이고 반제도적이라는 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내향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만 있다면, 이것은 오히려 자신들이 속한 조직과 사회를 변혁시키는 에너지와 헌신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 나우엔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나우엔이 보는 이 시대 인간상의 두 번째 특징은 아버지 상실의 시대 (fatherlessness)입니다. 내향적인 세대는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높은 지위나 권위가 있다고 해서, 더 많은 힘이나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자신들의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들은 위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자신들 앞에서 실패한 모습으로 살아온 세대를 신뢰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들이 직접 시도하여 실패하는 것을 목격하기를 선호하는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기준은 아버지 세대가 아니라, 자신의 동료, 친구가 됩니다. 이 시대의 세 번째 특성에 대해 나우엔은 강박성 (compulsiveness)으로 규정합니다. 그들은 불안, 신경과민, 정신 산만 등으로 인해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세대이며, 자신들이 속한 세상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합니다. 비록 그들은 자신의 부모 세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은 부족하지만, 이 세상을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엔이 50년 전에 서구 사회의 인간상을 표현한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한 것을 보면서 그의 예언자적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설사 아버지가 존재해도 충분한 소통과 관계가 결여된 아버지 부재 현상이 만연된 현대 가정의 모습과 자기중심적이고 반권위적이며 물질적 안락함과 눈앞의 욕망을 추구하면서도 항상 무엇인가에 쫒기는 듯한 불안에 시달리는 강박적인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하나의 전형적인 현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그럼에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이런 부족한 모습을 위해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그 분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문헌
양병모, “헨리 나우엔 영성이 현대 기독교인 영성에 미친 영향: 한 복음주의자의 견해”, 「복음과 실천신학」 제26권 가을호 (2012): 70-107.
오방식, “헨리 나우엔에게 있어서 기도, 공동체, 사역의 정체성 연구”, 장로회신학대학교, 「장신논단」 제12권 (2006): 301-333.
Henri Nouwen, The Wounded healer, 10.
Henri Nouwen, Bread for the journey: A Daybook of wisdom and faith, 박동순역, 「영혼의 양식」(서울: 두란노. 1997), 41-54.